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12월 21일, 제가 지내는 프라하 카렐대학교 Faculty of Arts (이하 예술학부) 에서는 총기 사건이 발생했고 최소 20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이 아래의 글은 최대한 덤덤한 마음으로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고가 일어난 건물은 카렐대학교 예술학부 건물입니다. 프라하의 명물인 프라하 성과 카렐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제가 프라하에서 소속된 학부의 건물입니다. 저는 예술학부 건물의 내부를 눈감고도 그려볼 수 있는데요. 범인이 4층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해당 범인이 카렐대학교 사람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4층에서 듣는 수업이 있는데, 4층에 올라가는 계단은 정말 비밀처럼 숨겨져 있으니까요. 그 건물을 자주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가 없을 테니까요.
전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해당 건물에서 <Data Processing>과 <Czech for Beginner>라는 수업을 듣습니다. 해당 사건이 일어난 날은 목요일이었고… 다행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다행히 해당 건물에 있지는 않았어요. 저는 예술학부에서 1-2분 떨어진 스타벅스에서 친구와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타벅스는 그 주 월요일에 오픈했었고, 내부는 아주 깔끔했고 풍선 장식이 곳곳에 걸려있었습니다. 제 차이티 라떼의 우유가 “Whole Milk”가 맞냐고 재차 확인해주던 직원은 아주 친절했습니다.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순간 스타벅스 내부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창문 밖을 힐끔 힐끔 보거나, 직원들이 2층에 올라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폈습니다. 소란스럽네~ 싶었는데, 같이 있던 친구가 “너 예술학부 근처라며, 괜찮냐?!”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처음에 주변에 행사같은 게 있어서 번잡하지 않냐는 뜻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였습니다. “예술학부 건물에서 Shooting이 일어났는데 괜찮냐”는 뜻이더라고요. 갑자기 정신이 팍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지, 여기 있는 게 안전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스타벅스 안에서 일단 대기했고, 곧 직원의 지시에 따라 밖으로 나갔습니다. 밖은 아주 혼란스러웠고, 경찰들이 도처에 깔려있었으며, 저는 최대한 빠르게 그 주변을 탈출했습니다. 평소의 프라하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였어요. 아주 먼 길을 돌아 돌아 먼 곳에서 트램을 타고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도로에는 구급차와 사이렌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차들은 경찰에게 검문을 당했습니다. 트램은 줄지어 오느라 평소의 몇 배의 시간을 들여 기숙사에 도착했습니다.
재빨리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 좋지 못한 표정의 사람들, 소식을 접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웃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 그리고 세상에 안개처럼 가득한 사이렌 소리.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작년 이태원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저는 신촌에 살고 있었는데요, 마침 서울에 놀러온 군대 후임이 할로윈이니까 이태원 가고싶다고 막 조르더라구요. 하지만 제가 완고히 오늘은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으니 다음에 가자, 나는 사람 많은거 싫다고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집에 돌아가서 접한건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그 날 제가 조금만 덜 피곤해서, 이태원에 갔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프라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총격 사건이 하루나 이틀 더 일찍 일어났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정확히 제가 수업을 듣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제가 그 날 갖고싶던 예술학부 후드티를 사러 건물에 잠시 들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살고 죽는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 걸까요. 죽고싶을 만큼 힘들다고 가끔씩 얘기하면서도 이런 일을 겪으며 다짐하는 것은 그래도 저는 너무나도 살고 싶습니다.
제가 죽으면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슬퍼할테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다가도 제 생각을 하며 울테고,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저를 곧 잊을테고, 그리고 그 어떤 이유보다도 저는 더럽고 치사하고 세상에 슬픈 일이 많고 가끔은 외롭고 비참해도 그래도 저는 정말이지...
더 살고 싶고 하고싶은 게 많고 괴로운 것보다 더 많이 행복하고 싶고 실제로 그럴거고 웃고싶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싶고 내 마음에 있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셀 수도 없이 하고싶고 해야하는 것들,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이유보다도 저는 그냥 살고싶어요
정말 내일 죽을 수도 있겠죠. 그 사실을 알고 난 후의 세상은 정말 모든 게 달라보입니다.
앞으로 살면서 오늘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오늘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내 일을 열심히 하고 가능한만큼 즐겁게 놀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전하고 그래야지. 말 그대로,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저에게 소중한 여러분들도 죽지 마세요. 저는 밥먹다가도 슬퍼할꺼고 씻다가도 마음 아파할거고, 제가 지옥가서 다시 만날 때까지 미워할겁니다. 여러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살아돌아오라고 매일 매일 소리칠꺼고 속으로 욕하고 다시 욕할겁니다. 그러니까 죽지 말고 저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갑시다.
사건으로 떠난 친구들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