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했구나 변했어
저는 사람들에게 제 고향을 말할 때 "수원", 그 뒤에 꼭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효의 도시".
실제로 구글에 효의 도시를 검색해보면 가장 맨 위에 수원시가 뜹니다. 웃기죠? 이 정체모를 캐치프레이즈를 들었던 이후로, 제 머리 속에 수원과 효의 도시라는 짝은 뗄레야 뗄 수가 없었습니다.
왜 효의 도시일까요? 당연히 수원 화성 때문이겠죠. 수원 화성. 지긋지긋도 합니다. 수원의 중고등학교에는 체험학습을 꼭 화성을 한바퀴 도는 코스로 해야 한다는 비밀스런 규정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질리고 싫어서, 역주행해서 편의점에 숨어있기도 했었죠. 어쨌건, 이 화성 주변 동네가 바로 요즘 소셜 미디어에서 유명한 행궁동입니다.
글쎄요, 제 나이 또래, 혹은 그 위의 수원 사람들에게 옛날 행궁동의 인상을 물어본다면, 오래된 동네, 낙후된 느낌, 연령대가 높은 동네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정체불명의 목욕탕, 오래된 롯데리아, 열린지 안열린지 알 수가 없는 세탁소 - 꼭 '컴퓨터크리닝'이라고 적혀있죠, 가끔씩 보이는 GS25. 이런 것들이 제가 어렴풋이 갖고 있던 행궁동의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요 몇년 사이에 완전히 바뀐 것 같아요. 도심 사이에 성곽이 박혀있는 모습이 꽤나 힙해보였을까요? 어느새 행궁동은 멋진 카페와 음식점이 늘어선 수원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외지에서도 이 행궁동을 구경하러 온다고 하니 참 격세지감이죠? 같은 성곽 한바퀴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그 시간동안 바뀐 수원의 모습은 행궁동만이 아니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다닌다는 그 지하철역, 수원역의 '애경백화점'은 확장의 확장을 거듭해 AK플라자와 롯데몰이 들어섰습니다. 이 롯데몰 입성에 수원시-애경-롯데 3자간의 법적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벌써 10년전 일이니까 정말 오래됐네요.
오리배가 돌아다니던 유원지 원천저수지는 수원의 또다른 랜드마크 광교호수공원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 동네 자체가 그 이름도 유명한 광교신도시가 되었죠. 제가 좋아하던 수원시청역 (생각해보니 이것도 제가 고등학교 때 생겼네요) 주변에 있던 갤러리아도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외관으로 광교로 이사했죠.
사소한 변화들은 더 많아요. 제가 어린 시절엔 킴스클럽이 단독 건물의 큰 마트로 있었구요. 맞다, 까르푸도 있었죠. 제가 고등학교 때 저희 학교 옆자리에 CJ R&D 건물이 건설중이었는데, 수업이 어려울 정도로 태양빛이 반사되어서 문제가 되었던 경험도 있죠. 맞아, 얼마전엔 스타필드도 생겼잖아요.
이런 사소한 것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강 시인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시간의 흐름은 바람이나 물처럼 몸에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런 변화들을 볼 때마다 머리로 느끼고는 하죠. 시간이 나의 곁을 떠나가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저의 글을 읽고 계시는 지금도, 시간은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습니다. 돌아가지 못해요.
정말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들도,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겠죠. 한 영화를 수 만번 돌려본다고 수 만번 재밌지 않듯이, 어떤 순간들은 인생에 딱 한 번이기 때문에 빛이 납니다. 제가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과거의 수원에서 쌓아올린 추억들이 가끔은 그립지만요, 사실은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요, 그러기보다는 앞으로 제가 다시 가꿔 나갈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아끼려고 노력합니다. 밥을 먹듯이요.
10년 뒤에 지금 수원에서 쌓아 올린 추억을 지금처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